문신에서 출발한 소박한 비엔날레

Posted on October 4, 2014 Under 뉴스

작품이 도주했다. 작가는 망연자실 쳐다보았다. 공범은 바람이었다. 마산 앞바다의 거센 바닷바람이 작품의 도주를 도왔다. 작품을 결박해두었던 줄만 땅 위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작품은 벌써 먼 하늘로 날아가 점처럼 보였다. 조각 작품 전시회에서 가끔 파손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작품 자체를 잃어버리는 경우는 드물다. 작품이 바람에 날아가버린 이유는 에어벌룬이었기 때문이다. 강영민 작가의 작품인 ‘만국기 에어벌룬’.

마산항 중앙부두공원에 설치했던 강 작가의 ‘만국기 에어벌룬’은 창원조각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이다(작가는 작품을 다시 제작해 전시회 오프닝에 맞춰 설치했다). 올해로 2회를 맞은 창원조각비엔날레는 다른 비엔날레에 비해 소박한 행사다.

창원조각비엔날레의 기원은 2010년 열린 ‘문신 국제조각심포지엄’이다. 마산 출신의 조각가 문신을 기리는 행사였다. 이 심포지엄에 모인 조각가들이 결의해 2012년, 마산항 앞 돌섬에서 제1회 창원조각비엔날레가 개최된 것이다. 올해는 규모를 키워 시립문신미술관, 창동예술촌, 마산항 중앙부두공원, 돌섬 등 네 곳에서 판을 벌였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창원조각비엔날레 제공</font></div>창원의 시립문신미술관에서 기찻길을 따라 내려오면 창동예술촌(위)이 나온다.
ⓒ창원조각비엔날레 제공

창원의 시립문신미술관에서 기찻길을 따라 내려오면 창동예술촌(위)이 나온다.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요란하지 않다. 차근차근 다지며 내실을 기한 느낌이다. 올해도 초청 대상을 아시아 지역 작가로 한정했다. 11개국 40여 팀의 작가를 초대해 네 곳의 전시장에서 특성에 맞는 작품들을 전시했다. 다른 비엔날레에서도 조각 작품이나 설치미술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지만 조각 작품 특유의 양괴감(量塊感)을 즐기고 싶다면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으뜸이다. 올해의 주제는 ‘달그림자(月影)’로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마산을 지나며 지은 시문에서 따왔다. 예술이 우리 삶에 달그림자처럼 잔잔하게 배어들게 하자는 의미다.

창원조각비엔날레를 즐기려면, 언덕 위에 있는 시립문신미술관(조각가 문신을 기념하기 위한 미술관)에서 출발해 옛 기찻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 좋다. 시립문신미술관에는 지역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매우 강렬한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중국 작가 리짠양의 작품 ‘군상’이 인상적이다. 여러 남녀가, 천자처럼 거만하게 누워 있는 사람의 발을 씻기고 있다. 백인 남성이 경호원처럼 서 있다. ‘천자’의 손가락을 백인 여성이 빨고 있다. 언뜻 새로운 중화주의를 표상하는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누워 있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저명한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다. 나름 풍자 정신이 발휘된 작품이다.

시립문신미술관에서 문신의 작품까지 감상하고 기찻길을 따라 내려오면 창동예술촌이 나온다. 예술촌 구석구석에 창원조각비엔날레 참여 작품들이 놓여 있다. 하나하나 찾아 즐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공방과 작업실이 많으며, 참여 작가들의 기념품도 살 수 있다. 예쁜 카페들에서 휴식을 취해도 좋다. 죽은 구도심 상권이 모처럼 예술의 힘을 빌려 활기를 띤다.

창동예술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기찻길을 따라 포구로 가면 마산항 중앙부두공원 전시장에 닿는다. 바다를 향해 열려 있어서 눈이 시원해진다. 조각 비엔날레를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가장 많은 인증샷을 찍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특히 조각가 문신에 대한 오마주인 박승모 작가의 ‘연기 문신’이 눈에 띈다. 문신 선생의 사진이 금속 철망에 실루엣으로 인쇄되어 사진 사이로 하늘이 그대로 보인다.

1회 조각 비엔날레의 전시장이었던 돌섬에는 여섯 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새로 작품을 설치한 것이 아니라 기존 시설을 친환경적으로 바꾼 것이다. 임옥상 작가가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예전 유원지 시설이었던 팔각정과 찻집을 리노베이션했다. 돌섬에서는 마산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서 꼭 가봐야 한다(중앙부두공원에 왕복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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