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영
성산아트홀
김종영, <자각상(작품80-5A)>, 1980, 브론즈, 46 × 25 × 8 cm
김종영, <79-4>, 1979, 나무에 채색
김종영, <여인 나상(裸像), 작품 53-2>, 1950, 디아섹, 40 × 80 cm
김종영, <여인입상>, 1950, 디아섹, 35 × 80 cm
김종영, <마돈나>, 1954, 디아섹, 40 × 60 cm
김종영, <황혼>, 1957, 디아섹, 40 × 60 cm
김종영, <포항전몰학도충혼탑>, 1956, 디아섹, 50 × 72 cm
김종영미술관 소장

<자각상(작품 80-5A)>은 김종영이 생애에 제작한 세 개의 자각상 중 말년에 조각한 마지막 자각상이다. 그의 자각상은 얼굴을 묘사하는 것에 몰두하지 않으며, 오히려 형체를 추상화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미래의 의지를 투영하는 다짐에 가까워 보인다. 이 작품은 수직으로 곧은 나뭇결과 비대칭에 약간 오른쪽으로 기운 모습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김종영은 구도자의 태도로 추상 조각을 오랜 시간 탐구해 온 조각가로, 자연스러움에서 생명의 원동력을 찾고자 했다. 작품 <79-4>는 원이라는 기초 도형을 연결하여 한 사람의 몸체를 연상시켜 형상의 본질에 닿고자 한 그의 시도를 보여준다. 세 개의 동그라미가 쌓여 있는 이 색채 조각은 종이를 연결한듯한 김종영의 과감한 시도를 보여준다. 자연 현상에서 구조의 원리와 공간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이야기한 김종영은 무엇을 만드느냐보다 어떻게 만드느냐에 더욱 열중했다.

<여인 나상(裸像), 작품53-2>은 1953년 3월 14일부터 4월 30일까지 런던에서 테이트 갤러리에서 개최된 <무명 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조각콩쿠르에 출품해 입상한 작품이다. 원작은 소실되어 도판 이미지만 남아있다. 이 작품 역시 원작이 소실되어 사진으로 전시한다. 이 당시 김종영은 “그 여인이 정치수인가? 정치수를 생각하고 있는 女人像인가?”라는 질문을 받고서, “내가 여인의 裸像을 취재한 것은 표현하기 위한 수단인 것뿐이다. 다행히 내 정신의 기억이 살아 있다면 이것은 정치수를 위해서 모조리 제공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응답했다. 김종영은 이 작품을 통해 정치수를 형태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정치수의 불안정한 마음을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말 제작된 조각 <여인입상>은 1960년 제8회 국전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현재는 사라진 조각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을 비롯한 인체 조각을 통해 그가 돌과 점토 재료를 통해 지향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양감과 단순한 조형미가 어우러지는 조각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1954년에 제작한 <마돈나>는 1954년 미도파 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제1회 성모성년기념 성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작품이다. 당시 김종영은 드로잉을 통해 서구 동시대 인체조각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인체에서 완전 추상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를 보여주면서 서구의 인체 조각의 흐름을 적용하는 ‘반추상’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1957년에 제작한 <황혼>은 1957년 제6회 국전 출품작이다. 점토로 작품을 제작할 때 깎는 것 없이 오로지 점토를 손으로 붙여 최종 마무리하였다. 이 작품은 쇠 주걱을 사용해 깎으며 정리했다. 원작이 유실되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으로 전시한다. 양감을 더욱 강력하게 드러내고, 점토를 붙이는 방식으로 작품을 마무리하는 것이 김종영의 점토 재료 작업의 특징이나, 이 작업에서는 깎는 방식으로 조각하여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