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화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사 날짜 : 2020.10.19 조회수 : 1,561
뉴노멀(New Normal) 시대의 창원조각비엔날레 좌표 읽기
안진화(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강력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전례 없는 팬데믹(Pandemic)은 지난해 겨울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며 전 세계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 즉, 인류를 둘러싼 모든 시스템 뿌리째 흔들고 있다.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락다운(Lockdown)이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면서 미술계에도 예외 없이 제동이 걸렸는데, 그중에서도 대규모 국제 행사인 비엔날레는 기획부터 개막 후 운영까지 모든 과정에서 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국내 코로나19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는 2단계로 상향 조정되었고, 결국 2020창원조각비엔날레는 본전시 및 특별전이 열리는 성산아트홀을 폐쇄한 상황에서 관람객이 없는 아주 생경한 개막식을 치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가 개막한 이상, ‘어떻게 관람객과 만날 것인가, 즉 이전과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 관람객과 소통하는가’는 어느 때보다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또한 비엔날레가 국제적 예술 교류, 동시대 새로운 담론 생산과 확장과 더불어 당대의 이슈에 기민한 대응을 볼 수 있는 전시임을 감안한다면,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비조각-가볍거나 유연하거나”가 이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였는지 주목해볼 만 하다.
닫혀버린 전시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관람객과 만나기 위한 시도는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다른 국내외의 비슷한 시기에 오픈한 비엔날레들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각종 전시 및 전시연계 콘텐츠들을 공개하며 비대면 서비스를 확충한 것이다. 2020창원조각비엔날레는 전시 개막전부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등의 복수의 SNS 채널을 활용하여 전시에 관심을 환기하는 홍보 콘텐츠들을 공유했다. 또한, 개막식 영상, 개별 작품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들과 동시에 섹션별 VR 전시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했다. 그 외에 온라인 비평 웹진을 개설하여 지역 미술계의 자유로운 발화를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긴급한 상황 때문이었을까? 온라인 전시 도입을 불가피하게 앞당기면서 부족한 부분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상으로는 전시장의 느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겠지만, 대신에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은 전 세계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통해서 양방향의 수평적 소통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즉, 디지털화한 전시와 각종 콘텐츠들은 모두에게 열리게 되며, 전시는 가상세계에서 보다 다층적인 소통 지점이 발생하는데, 2020창원조각비엔날레는 이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해 다소 아쉽다.
웹을 통해 전시 오픈 전부터 전시 연계 프로그램 중 가장 먼저 대중들에게 공개된 것은 조각에 대한 강좌 시리즈인데,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시민 강좌 조각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으로 총 12개의 강좌 영상을 유튜브 계정을 통해 공개하였다. 문제는 이 영상들의 중 9개의 영상은 창원문화재단의 유튜브 채널에, 마지막 3개의 영상은 창원조각비엔날레 유튜브 계정을 통해 공개되며 강좌 목록이 분산되어 있어 한눈에 확인할 수 없다. 각 영상의 형식도 제각각인 데다 일부 영상은 주변의 소음이 그대로 녹음되어 강의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조각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되짚는 수 시간에 달하는 강의가 비조각을 주제로 하여 전통적인 조각의 형식을 탈피한 ‘유연한’ 조각에 초점을 맞춘 이번 비엔날레에 대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떤 직관적인 관심을 유도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개막일부터 순차적으로 업로드한 130여 개의 작품 개별 도슨트 영상 및 섹션별 VR 관람 영상 등을 업로드한 유튜브 채널은 개막 후 며칠 뒤 댓글 기능을 차단해두어 온라인 관람객들의 소통 창구는 닫혀버렸다.
다른 하나는 창원의 용지공원, 그중에서도 포정사의 일부를 ‘본전시 1, 비조각으로부터’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여 일부 대면 전시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실제로 개막 시기에 코로나19의 사태가 악화로 실내 전시장을 잠정 폐쇄하기에 이르자, 유일하게 대면 관람이 가능했던 공간이 바로 용지공원(포정사)이었다. 물론 올해로 5회차에 접어든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조각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여 창원의 돝섬, 마산항 중앙 부두, 마산 원도심 일대, 용지공원 등 종종 야외 장소를 전시장의 일부로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야외전시 필요성과 당위성을 논할 수 있는 때는 없었다.
더 이상 동시대적 글로벌 거대 담론에 초점을 맞춘 화이트큐브 속 대형 전시, 혹은 해외 작가 개별이 피상적으로 접근한 장소 특징적 작품들을 나열하는 야외 전시는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더 세심하고, 다층적인 창원만의 독특한 공간들과 그 속의 다양한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탐색을 토대로 한 예술적 사유로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시작으로 비엔날레의 실험적인 담론들과 창원만의 독특한 장소성을 결부시키고, 그 개방된 장소에서 세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정체성을 찾고 새로운 전시의 내러티브와 방식을 구축하는 작업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용지공원(포정사)에 설치된 이이남의 <피노키오의 거짓말>(2018)(좌, 영구 작품)와 시몬 데커의 <버블 껌 인 창원>(2020)(우).
이와 맞물려 비엔날레를 통해 산발적으로 이곳저곳에 영구 작품들을 매입하여 설치하는 방식은 비판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창원시 자체를 조각 공원화하는 장기적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개최된 ‘2010문신조각국제심포지엄’이 그 모태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조각국제심포지엄은 2012년 2회부터 그 형식이 비엔날레로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각 공원화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까지 약 60여 점의 영구 작품이 용지공원을 포함한 창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올해도 어김없이 출품작 1점이 영구 설치될 예정이다. 이렇게 지난 전시의 영구 설치 작품들이 다수 설치된 공간, 다시 말해 용지공원이 올해의 야외 전시공간으로 다시 활용되면서 출품작들과 혼재되어 있는 광경은 시각적으로 매우 혼란스럽다.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의 리플릿을 꼼꼼히 읽지 않는 이상 전시된 작품들을 지난 비엔날레의 영구 작품과 구분 지어 관람할 수 없고 본 전시의 주제와 각 섹션의 소주제, 그리고 작품 간의 유기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향후 창원조각비엔날레의 밀도 있는 야외전시를 위해서는 새로운 공간의 발견과 재해석이 절실하다.
우리는 이러한 2020창원조각비엔날레의 코로나19 상황 대응과 결과들을 살펴보며 앞으로의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좌표를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인류의 물리적 활동 반경에 큰 제한이 생기고, 그로 인해 일상생활 패턴에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혹자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예견된 수순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그 시기가 급격히 앞당겨졌고 앞으로 가상 세계가 현실화될 것이며 문화예술계는 가상세계로 그 중심축이 움직일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비대면의 전시만으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신체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실제 전시 공간에, 작품에 여전히 존재한다.
결국 다가올 뉴노멀 시대에 관람객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앞서 살펴본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콘텐츠 활성화와 전시 공간의 개념적, 물리적 확장을 병행하되, 보다 정교한 구성과 형식을 갖춘 대면-비대면 전시의 상보적 효과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에 없던 혼란을 겪고 있지만, 이번 위기를 기회 삼아 이참에 근본적인 창원조각비엔날레 자체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장기적 방향성을 다시 점검해보고 그에 따라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논의하기 위해 지자체와 창원문화재단의 지속적이고 변화 지향적인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