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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Changwon
Sculpture
Bienn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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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웹진

믿음의 탈구

김한량 x-worker 날짜 : 2020.10.22 조회수 : 1,968


 

창원조각비엔날레: 비조각-가볍거나 유연하거나

믿음의 탈구

김한량(x-worker)

 

겸허한 레토릭(Rhetoric)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는 장면을 목도한다. 익숙한 , 현란한 수사는 급박한 종지부를 찍는다. 집적된, 그러나 . 첨예하지만 공허한 시나리오. 베일이 걷힌 무대 위에서 변론을 즐기는 배우들의 목소리는 저속한 소음이 되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레토릭 시나리오가 창안한 무대는 짧은 순간에 특정한 경험(감각의 마비) 불러일으키는 것에 급박한 듯 종지부를 찍는다. 급조된 혼란이 특정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의지는 시작하는 즉시 외면되고 일반적경험으로 전환된다. ‘특정한 가장한 일반적경험은 낯익은 연쇄적 궤도를 가진다. 과거의 유산이 지엽적으로 비틀려 출현하고 그 자체로 특정한당위성을 상실한 유산의 복권이 가지는 스펙터클 기대어 성좌를 재생산한다. 저자-연출가레토릭 시나리오-무대가 현재 시간 속에서 특정한 경험을 제공하면서 결정적 기억이 되기 위한 욕망은 미래 시점에서 기념비적 유산으로 기억되기와 궤를 같이하지만, 기대를 배반하듯 낯익은 궤도로 다가오는 데는 위태로운 형식과 서사가 아닌 안정적인 답습이 기저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류에 발맞춰 이미지의 변모를 시도하지만, 현재의 총체적 시나리오를 관통하는 의식은 부재하다. ‘시나리오-무대의 제 기능은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되고 고착과 반복의 딜레마는 의식의 영역에 포괄되지 않은 채 잊힌다.

 

접촉 불량

시나리오-무대’, 즉 비엔날레가 직면한 문제는 모델자체를 둘러싼 것이 아니라 지배적 관성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 권태로운 권위의 그림자 아래서 변별성(스펙터클)을 내세우는 것과 진배없는 관성은 현재의 총체적 시나리오와 비엔날레의 관계를 끊어내고 이질감을 발생시킨다. 대안적 지식 생산과 사유의 장에서 멀어진, 예술의 범주를 확장하는데 몰두한 다원성의 기치 아래 스펙터클이 된 대부분 비엔날레처럼 비조각-가볍거나 유연하거나의 시나리오를 실현한 하나의 비엔날레가 불러일으키는 이질감은 낯설지 않다.

 

- ‘모든 조각을 품는다는 기치 아래서 자기모순을 통한 자기 부정을 거쳐 자기반성을 통한 자기 성찰을 함유하는 비조각(Non-Sculpture)’ 조각의 확장성 끝에 특정성(Specificity) 지향하듯 다시 돌아와, 조각의 특정성을 외면하고 범주를 요청하면서 보편성으로 걸어간다. ‘비조각시나리오의 엇갈림은 1970년대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 of art)’ 욕망이 낳은 모순과 오버랩 된다. 비물질화를 지향하는 예술이 물질의 개입 없이 온전히 비물질적으로 구성된 없으며, ‘시각화 과정에서 물질성의 배제는 불가능하다. ‘조각이 아닌 사물, 자연, 에너지, 예술 모든 개념을 포함하려는 비조각 의지는 부정교합의 유토피아로서 작동한다. ‘비조각시나리오는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에서 보편성을 향한 노력을 확장으로써 비평적 근거를 마련한 지점에서 멈춘 상태로 인용 맥락을 지울 없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보편성에 대한 맹목적 수용으로부터 특정성을 되찾는 , 매체 특정성의 회복 주장한다.1) 비엔날레가 빚진2) 비조각 시나리오는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선회하여 특정성을 재요청하는 장면에서 유구한 잡동사니가 무분별한 다원성을 경유해 예술로 편승하기 위한 존립 근거를 마련하는 용법과 다름없다.

 

- 비조각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가볍거나(형식)’, ‘유연하거나(내용)’ 조각의 협소한 범주에 반하는 확장성을 내포하지만 무분별한 다원성을 성찰하는 대신 수용한다. 형식적 에토스에 반하는 가볍거나는 유산을 전복하고 현재와 미래의 기념비가 되기를 자처하는데 위태로운 시간의 유속에서 기억된 유산은 공고하다. 내용적 관대함을 표방하는 유연하거나 결과보다 과정 중심, ‘완성을 향한 미완성이라는 상충하는 어법에 길을 잃는다. 가볍거나 유연하거나, 이외의 항목이 개입될 의도적 공백이 존재하는데 범주의 확장에 대한 강박을 동반한 에토스의 재출현을 간과할 없다. 비조각 시나리오의 가볍거나 유연하거나의 현란한 레토릭이 함의하는 열망은 열병으로 출현한다.

- 비조각 시나리오가 펼쳐진 무대는 과거의 유산을 상기시키는 복제 표본으로 점철되어 보증인만 달라졌고 출처의 표기 없이 낯익게 소환된 맥락을 지우기 어렵다. 무대는 가볍게 유산을 소환하고, 유연하게 변론하며 시나리오와 일률적 관계를 맺는다. 이브-알랭 부아(Yve-Alain Bois)와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섹션과 작품이 단선적으로 접속하는 지점을 경계한 있다. 그들은 1996 공동 기획한 비정형: 사용자 안내서 L’Informe: Mode d’emploi/Formless: A user’s Guide전시의 동명 저서에서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에서 출발하여 사람이 발견한 비정형의 흔적들을 분류하고 설정한 작용들과 적용되는 작품을 무질서하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으로 연결한다.3) 두 사람은 예를 들면, 피에르 만초니(Piero Manzoni) 제작한 예술가의 The Artist’s Shit(1961) 저급유물론 섹션에는 부재한다. 만약 작품을 저급유물론 넣을 경우 배설물의 물신화를 조장할 있는 위험부담이 아주 컸으며, 이는 바타유의 사상과는 이질적인 어떤 것이라고 우리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4) 라고 서술한다. 두 사람이 조르주 바타유의 사상을 참조해 발견한 일련의 작용에 작품을 조심스럽게 소환한 것은 비정형의 흔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떠한 틈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피에르 만초니의 예술가의 The Artist’s Shit(1961) 저급유물론 적용하지 않은 것은 정립된 적용의 선언이 부합하는 형식과 서사를 지닌 작품과 접속할 여타의 사유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상쇄되는 지점을 경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고, 범주를 확장하는 비조각의 선언에 기인하는 무대 위의 작품은 틈을 상쇄하여 자체로 완성되었고 일률적 이해를 요구한다.

 

열병의 사막에서, 신기루

스펙터클, 의무방어전, 그리고 은밀한 축제주의(Festivalism) 등으로 치환된 비엔날레를 한편에서 일종의 파국으로 인식하는 논의는 계속해서 이뤄진다. 그림자처럼 따르는 위기의식은 세계화 현상 이후 심화하지만 실제로 지반을 재설정하기 위한 시도는 피상적이다.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더듬어 전형적으로 나열하는 아카이브, 아젠다(Agenda)없는 형식적 세미나 레토릭 시나리오를 써 내려간다. 더불어 지구적 열병(COVID-19) 현실의 사막화(Desertification)를 촉진하는 상황에서 비엔날레는 방향을 상실한다. 어떠한 비엔날레는 열병의 감소를 기대하며 잠정적으로 유보하거나 랜선 플랫폼을 경유해 실현된 무대의 면면을 업로드 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계획된 시나리오-무대 비대면 국면에서 실제적 만남의 경험을 보장하는 방법론에 몰두하지만, 열병의 뉴노멀(New-Normal) 진입한 현실의 총체적 시나리오에는 무관심하다.

열병의 사막 속에서 비조각: 가볍거나-유연하거나 시나리오-무대 실제적 만남의 대안적 방법론으로 랜선 플랫폼에서 임시적 만남을 주선한다. 랜선 플랫폼에 접속하는 사용자(User) 실제 무대의 공간 구조, 배치, 분위기 등을 화면(Screen) 이미지로 파악할 있지만, 실제 무대가 생성하는 경험은 보장받지 못한다. 비엔날레가 창안한 랜선 플랫폼은 아카이브 열망에 기인한 참조 리스트를 열어둔 것에 충실하며 사막화의 징후로써 작동한다. 예고된 실제 무대가 막을 올렸을 랜선 플랫폼에서의 만남은 자체로 신기루에 다름없다.

 

지금 현실은 이미 상상된 적이 있던 어떤 시나리오도 따르지 않을 테지만, 우리에게는 정말 필사적으로 새로운 대본들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에게 인식의 지도 그리기를 건네줄 있는 새로운 이야기들, 우리가 어디로 향할지 그려줄 현실적이면서도 파국적이지 않은 의미가 담긴 이야기가 필요하다.”5)

 

출구 없음, 비틀린 미궁

시나리오-무대 방향 상실을 겪는 과정을 인정하고 섬세한 호흡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일련의 복잡한 회로 연결 과정에서 접촉 불량을 검토하고 실재에 도달하기 위한 가설 실험하며 회로를 개방한다. 개방 회로는 시냅스(Synapse)처럼 작동하며 도래하는 이미지를 맞이한다. 비엔날레를 포괄하는 전시는 연결망을 다층적으로 구축한다. 과거의 유산에 질문을 던지고, 논리(Logic)를 세우며 운명의 안전지대에서 탈주를 시도한다. 연결의 이유를 노래하면서 벼랑 끝으로 향한다.

 

 

비엔날레로 호명된 비조각 시나리오-무대 제도(Institution) 대한 근본적 질문은 상쇄되고 타자를 위한 전시 슬로건 아래 소환된 담론은 사변적으로 작동한다. 진리 탐구와 대안적 지식 생산의 장은 해체되고 어중간한 대체물을 위한 경유지로 변모한다. 반복과 고착의 딜레마가 재생산하는 에토스의 배반을 주저하며 필연적 서사, 단선적 형식, 명약관화한 논리가 부유한다. 단숨에 발현된 시나리오-무대 급박한 전개 속에서 풀리지 않는 매듭을 묶는다. 강박적 완결은 비틀린 뫼비우스(미궁) 재생산한다. 출구는 없다.

 

 

1) Rosalind E. Krauss,Reinventingthe Medium, Critical Inqury, Vol. 25, No. 2 (Winter1999),pp.289 – 305.

2) 비엔날레가 빚진 개념은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확장된 장으로서의 조각도식이다.해당 도식은 다음을 참고하라. Rosalind E. Krauss, Sculpturein the Expanded Field, October,Vol. 8 (Spring, 1979), pp.30-44, p. 37.

3) Yve-Alain Bois,Rosalind E. Krauss, 『비정형: 사용자 설명서 L’Informe: Mode d’emploi/Formless:A suer’s Guide (미진사, 2013)p. 28, 이브-알랭 부아와 로잘린드 크라우스가조르주 바타유를 비롯해 발견한 비정형의 흔적들은 전시와 책에서 간결함을 유지하고자, 네 가지 작용들을「수평성 horizontality, 「저급유물론 低級唯物論, base materialism,「펄스 Pulse, 「엔트로피 entropy」로 나눴다. 이것들은 분류되고 범주화되는 것을 전제로한다.

4) Yve-Alain Bois, Rosalind E. Krauss, 위의 책, p. 29.

5) Slavoj Žižek, 『팬데믹 패닉 PandemicPanic (북하우스, 2020),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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