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인턴 날짜 : 2020.09.29 조회수 : 1,497
지고르 바라야자라 & 그린하우스의 <빵조각>으로 본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인턴 이지혜
2020창원조각비엔날레는 통합 창원시 10주년, 비엔날레 태동 10주년을 맞이하는 5회 행사로서 향후 비엔날레의 유지 및 발전을 위하여 조각을 통한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을 시도한다. 이번 전시는 '비조각-가볍거나 유연하거나'라는 주제 아래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고, 총 34개국의 86팀(94명의 작가)이 참여하였다. 김성호 총감독은 “일반적으로 조각은 딱딱하고 견고하거나 덩치가 큰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통념적 조각과는 다른 가볍고 유연한 소재·재료의 조각을 조망함으로써 조각의 확장과 조각에 대한 더 깊고 넓은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고 비엔날레의 성격을 말한다. 이번 현장 리뷰에서는 지고르 바라야자라 & 그린하우스의 <빵조각>을 통해 2020창원조각비엔날레의 방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빵조각>은 스페인 출신의 바라야자라와 창원의 용지호수 맞은편에 위치한 빵집 그린하우스와의 협업 작업이다. 전시장에는 바라야자라가 2014년부터 선보인 빵조각과 창원의 빵집 그린하우스에서 생산된 빵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또한 작가의 빵조각 틀에 제빵사가 복제 베이킹하여 전시장에서 판매한다. 이 작업을 통해 2020창원조각비엔날레의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고찰해보고자 한다.
지고르 바라야자라 x 그린하우스 <빵조각> 2020, 빵, 가변 설치
첫째, 기존의 모더니즘 조각의 가치를 전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모색한다. 전시장에는 작가가 아닌 그린하우스의 제빵사가 작가의 빵조각 형태를 복제, 대체, 변형한 따끈한 작품을 관객에게 판매한다. 빵은 전시장을 찾은 관객에 의해 구매되어 찢기고 삼켜진다. 즉 제빵사에 의해 복제된 빵조각은 원본성을 상실하고, 관객에 의해 해체된다. 여기서 말하는 복제성은 모더니즘 미술의 근거가 되는 ‘원본성’과 ‘독창성’, 즉 ‘아우라’의 해체와 전통적인 예술적 가치의 붕괴를 상징한다. 다시 말해 복제된 작품은 기존의 관습과 형식, 전통의 틀을 해체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시키며 현대미술 개념에서 새로운 예술의 의미와 가능성을 생성한다. 결과적으로 <빵조각>은 제빵사에 의해 복제되면서 기존의 모더니즘 미술이 지향하는 원본성과 독창성, 작가의 존재를 전복시키는 실험적 작업이다. 이는 2020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 강조하는 “조각이 시도하는 ‘자기부정’의 과정이자 결과”를 그대로 반영한다. 복제, 대체의 방식은 바라야자라의 작업뿐만 아니라 비엔날레에 출품된 많은 작업들에서 나타난다. 리홍보(HongBo LI, 1974- )의 <자연 연작-나무>는 종이로 제작된 통나무로 작품을 자유자재로 늘리고 비트는 것이 가능하다. 다른 또 하나는 하이포매닉스의 <마크 퀸의 셀프가 여기 있을 뻔했다>이다. 이 작품은 영국 yBa 작가 마크 퀸(Marc Quinn, 1964- )의 <셀프 self> 출품을 위해 총감독과 큐레이터들이 노력했으나 최종적으로 결렬되었고, 이들이 아쉬운 마음오 합심하여 고안해 낸 작품이다. 네온사인으로 제작된 작품은 제목 그대로 “마크 퀸의 셀프가 여기에 있을 뻔했다”라는 텍스트가 쓰여 있다. 실제 전시장에는 마크 퀸의 작품이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 텍스트를 통해서 그의 작품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므로, 이 텍스트는 <셀프>의 은유인 셈이다. 따라서 이번 비엔날레에 출품된 조각들은 지금까지의 견고하고 딱딱한 기념비적인 조각을 넘어,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체와 변형, 복제가 가능한 ‘유연한 작품’인 것이다.
둘째, 지역의 커뮤니티를 활성화한다. 현재 국내의 국공립미술관 및 박물관, 지자체의 문화재단에서는 다원성과 포용성을 강조한 다양한 전시와 문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지역 자원과 지역 스토리를 활용하여 지역민의 문화 향수 증진과 참여를 도모한다. 또한 <빵조각>은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 상권 활성화의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작가의 아이디어와 지역의 자원이 결합될 때, 지역성에 기초한 지역적 연대로 확산된다. 나아가 시민들에게 익숙한 동네 빵집과의 협업은 ‘미술’에 대한 접근의 문턱을 낮춘다. 사실 미술에 관심이 없다면 지역의 국공립 미술관과 문화재단의 유무조차 알지 못하며, 문화 예술 기관과 주거지가 가까이 위치하더라도 문화생활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비엔날레는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여 보다 많은 시민이 쉽고 즐길 수 있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예술을 수단으로 하여 지역 상권의 활성화와 같은 사회와 관련된 여러 종류의 문제 해결을 도모할 때, 예술을 통한 협동은 시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삼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작가와 사회 공동체의 협업에서는 과정과 소통을 강조한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빵조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참여 작업과 시민 참여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셋째, 협업을 통한 소통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 <빵조각>은 빵을 매개로 하여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작가가 제작한 빵조각을 그린하우스의 제빵사가 복제하여 관객에서 판매한다. 관객은 빵(복제된 에디션 작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작업에 참여한다. 즉 작가와 제빵사, 관객의 참여로 작업이 완성된다. 이와 같은 협업 작업은 현 상황에 비추어볼 때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기획자이자 미술사학자인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1990년대 심화되는 후기 자본주의 체제하에 인간 상호 간의 소통이 폐쇄된 상황에 주목하였고, 일련의 작가들이 이를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인식하고 교류를 위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낸다고 평가하였다. 나아가 미술이 사회적 유대와 관객의 상호 작용에 집중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를 ‘관계의 미학’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부리오에 의해 ‘관계미술가’로 분류된 작가들의 작업 형태는 전시장에서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거나 작가와 관객의 직접적인 만남에 초점을 맞춘 작업이다. 관객은 자유롭게 전시장을 거닐며 작가 혹은 다른 관객과 소통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전 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대부분의 오프라인 네트워크가 마비되었다. 모든 부분에서 활동을 제한하는 지금, 다시금 부리오의 ‘관계의 미학’을 떠올리게 된다. 관계 미술가들이 활동하던 1990년대에는 웹(World Wide Web)의 발달로 오프라인의 인간관계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직접 대면하는 활동 자체를 제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상점과의 협업과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빵조각>은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필자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한다. 관객의 부재로 텅빈 작업 공간은 ‘잠시 멈춤’을 실행하고 있는 듯하다. 직접 대면이 어려운 현 상황을 그대로 시사하는 것이다.
현재 비엔날레 측에서는 온라인 전시를 제공하고 있고, 사전 예약을 받아 제한된 관객을 오프라인 전시장으로 초대한다. 코로나19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모든 문화 예술 기관이 오랫동안 폐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술인의 실업, 지역민의 문화 예술 활동 단절 등의 문제로 미루어 보아 철저한 방역 체계를 구축하고, 발 빠르게 비상 대책을 마련하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진정되어 작업 공간이 ‘소통의 장’, ‘아이디어 교환의 장’으로서 역할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관계자 인터뷰
이번 관계자 인터뷰는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로 인해 서면으로 진행되었다. 현장에서 대면 인터뷰를 했다면 더욱더 현장감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겠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서면으로 대체하였다. 아래는 비엔날레 관람 후 여러 가지 궁금증과 앞으로의 계획에 관한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다.
Q. 코로나19 상황에서 다양한 국가에서 작품을 반입하는데 여러 문제점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전시 준비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 몇 가지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네, 코로나의 전 세계적 유행으로 인해서 출품 작가들의 국내 입국이 통제를 받아서 작품 전체를 운송하는 방식, 그리고 일부를 운송하고 일부는 작가의 아트플랜에 따라 한국에서 제작해서 결합하는 방식, 전체를 한국에서 제작 대행하는 방식 등 다양한 제작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자가 격리를 거쳐 또 일주일 넘게 걸리는 설치 제작 기간을 할애할 수 없게 된 작가들이 입국 전에 방향을 바꿔 전혀 다른 작품을 출품하게 될 때에는 여러 가지 모험과 어려운 지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에피소드는 정말 많습니다만, 공식적인 인터뷰에서는 이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Q. 특별전2에서 청년 기획자들이 참여하셨습니다. 국내에서 청년 기획자가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매우 좁은데, 향후에도 청년 큐레이터가 참여할 수 있는 공모가 지속될까요?
A. 비엔날레 행사가 감독에 따라 달리 진행되는 관계로 다음 비엔날레에서 신진 큐레이터의 공모를 통한 참여가 진행될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다음 비엔날레의 감독께서 정하실 몫입니다. 다만 이러한 과제가 있었음을 자료로 남겨서 후속 비엔날레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되길 기대합니다. 물론 청년 기획자들의 활발한 참여로 이러한 일들이 지속될 수 있도록 비엔날레 현장에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Q. 끝으로, 현재 2020창원조각비엔날레는 온라인 전시와 사전 예약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A. 네, 이미 유투브를 통한 온라인 전시 소개는 하고 있습니다만, 작품 설치와 함께 준비했던 다양한 영상들을 마무리하고 9월 30일에 본격적인 온라인 전시 섹션을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개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전시 중 전시 투어 및 커뮤니티 프로그램 운영, 카탈로그 발간, 코로나19로 연기된 개막식과 프레스, 국제컨퍼런스 그리고 결과 보고에 대한 다양한 일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