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창원조각비엔날레를 개최하며
2012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창원, 마산, 진해가 한 도시로 통합되어 동남권 거점도시로 발돋움하게 된 것을 계기로 마련된 조각비엔날레이다. 도시 통합도 경사스런 일이지만 국내 최초로 조각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것도 흥미롭다. 창원은 조각과는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한데 문신과 김종영,박종배,박석원, 김영원 등 여러 명의 뛰어난 조각가들을 배출한 곳으로 이번 비엔날레는 이런 예술의 고장에서 개최되어 한층 그 의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예술행사가 미술관에서 개최되는데 비해 이번 비엔날레는 마산 앞바다에 위치한 아담한 해상공원 돝섬에서 개최된다. 각종 해양식물이 서식하고, 사철 싱그런 옥색 파도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해상유원지이다. 이곳은 육지에서 1.5km 떨어진 섬으로 여객선을 타면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창원시민들의 쉼터로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2012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이곳이 섬이라는 특성을 감안해 ‘꿈꾸는 섬’이란 주제로 열린다. 참여작가는 국내작가 15명과 해외작가 5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출품작품은 총감독의 추천과 조직위원의 심의를 거쳐 지리적 특성을 살렸으면서도 조형적으로는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을 선정하였다.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개최지에 영구설치하게 될 예정이다. 오랜기간 설치될 것에 대비해 나무 등 일회적인 재료들은 배제하고 돌이나 철, 스테인레스 스틸, 브론즈, 시멘트와 같은 경성재료를 사용한 작품들이 주종을 이룬다.
내용면에서는 돝섬이 아름다운 해양식물들의 서식지임을 감안하여 각종 식물들을 모티브로 한 친근한 작품들과, 관객이 만지고 들으며 쉬어갈 수 있는 참여형 작품이 주축을 이룬다. 또 일부 작가들의 경우, 지하 전시장처럼 꾸미거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스페이스를 만들고 소리를 작품소재로 삼거나 놀이기구를 만드는 등 공간의 다양한 해석을 꾀하였다. 출품작들은 기존의 장식적이고, 기념비적인 조각품과 차별화된 참신한 작품들로 관객들을 맞아줄 것이다.
2012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전시 구성은 국내 작가들이 참여한 ‘본전시’와 해외 작가들 중심의 ‘특별전’, 그리고 모든 참여 작가들의 작품취지와 밑그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드로잉전’으로 각각 나뉘어 열리게 된다.
우선 본전시는 ‘꿈꾸는 섬’이란 테마에 맞추어 장소특정적이고 스토리텔링이 있는 작품들로 꾸며져 있다. 참여 작가로는 김병호, 김상균, 김영섭, 김주현, 김태수, 김황록, 노준, 서정국, 신치현, 안규철, 안병철, 정명교, 정현, 최태훈, 황영애 등 15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먼저 자연적 형태속에서 근원적인 생명의 가치를 발견하는 작가로는 안병철과 황영애,김주현과 김태수가 있고, 자연 자체 또는 자연이 주는 풍성함에 주목하는 작가로는 서정국,정명교,김황록,김영섭 등이, 관객의 참여를 중시하는 작가로는 정현,안규철,김병호,노준 등이 포함된다. 그런가 하면 시간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더듬어가는 작가로는 김상균,최태훈,신치현 등이 있다.
특별전에서는 해외 작가 제임스 홉킨스(James Hopkins, 영국), 제임스 앵거스(James Angus, 호주), 미셸 드 브로인(Michel de Broin, 캐나다), 카즈야 모리타(Kazuya Morita, 일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 미국)가 초청되었다. 그중에서도 데이비드 브룩스는 지하에 웅덩이를 파고 실제의 트렉터를 옮겨와 산업화의 현실을 미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영국의 신예 조각가 제임스 홉킨스는 국제도시 창원을 상징하는 지구본을 제작한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유명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던 미쉘 드 브로인은 계단이 나있는 원통형 구조물을 관객들이 드나들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할 수 있는 놀이형 작품을, 제임스 앵거스는 두 개의 부메랑을 대립시킨 것같은 대단히 역동적인 구도의 작품을, 그리고 일본의 건축가인 카즈야 모리타는 벽돌을 쌓아 만든 돔형의 쉼터를 조성하여 돝섬을 찾는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마련하였다.
특별히 이번 2012 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는 전시 기간 내에 도슨트 운영, 시민이 만들어가는 예술작품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참여작가에 좀더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돝섬에 위치한 홍보실을 방문하여 이번 작품의 초안이랄 수 있는 드로잉 작품과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기록물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행사는 현대미술하면 의례 어렵고 난해하다는 통념을 깨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비엔날레가 되도록 계획하였다. 친밀한 작품들이 그렇거니와 각 작품명패에 QR코드를 넣어 작품이해를 도모하고, 시각만이 아니라 만지며 느끼고 듣고 앉는 등 공감각적인 작품들이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이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예술작품과의 소통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최측에선, 돝섬을 찾는 방문객들이 동시대 조각을 숲이 우거진 자연속에서 마음껏 감상하고 음미하며, 그러면서 재충천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때마침 인근지역에서 가고파 국화축제가 개최됨으로써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두 배의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돝섬은 옛날 가락왕의 총애를 받던 미희가 나들이를 나왔으나 환궁치 않고 피해 있다가 금빛 도야지로 변하여 정착하였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풍부한 서사가 깃들어 있는 ‘꿈꾸는 섬’에 오면 누구나 쉼과 여유를 취하며 꿈 많았던 순수한 시절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꿈꾸는 섬’이란 주제에는 잃어버린 꿈을 되찾고 자유를 꿈꾸며 희망찬 내일을 기약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이번 비엔날레를 시발점으로 아름다운 해상공원 돝섬이 더욱 널리 알려질 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문화명소이자 새로운 예술의 요람으로 재탄생되길 희망한다.

서성록, 2012 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이오나 위테커 (에디터&미술평론가, Flash Art/Art Asia Pacific/Frieze/ArtSlant)

너무나 많은 현대미술이 일시적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현대미술은 이동과 불안정성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래서 예술은 한시적인 컨디션에 의해 반복되는 프레임에 갇힌다. 전시와 그 뒤 이어지는 또 다른 전시의 네트워크 속에서 순간적인 관심의 연속이 현대예술의 의미를 가두고 있다. 혁신이란 용어가 아름다움이란 단어를 몰아냈고, 지속가능한 가치에 대한 중요성은 점차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현대미술의 한시성을 극복하고 있는 창원조각비엔날레는 20 명의 작가의 작품 20점을 견고하게 보여준다. 화이트 큐브에 갇혀 있던 예술품을 자연 속에서, 야외에서 본다는 즐거움은 마치 ‘왕의 귀환’처럼 우리에게 반갑게 다가온다. 시간의 제약을 극복한 이들 설치조각작품들은 영속적인 현대미술의 가치란 무엇인지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어떤 경계를 만들지 않는다. 하루, 이틀, 그리고 몇 달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환경을 이들 작품들은 그대로 흡수할 것이다. 그들은 변화된 시간과 환경의 축적인 동시에 다가올 미래에 대한 연속성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여, 이들 작품들은 지속가능성과 관객,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가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런 지속가능한 가치야 말로 현대미술에서 말하는 “혁신”이다.

조각의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이리나 주카 알렉산드렐리 (큐레이터, 평론가, 저널리스트, Il Sole 24 Ore)

조각의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현대조각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답변을 데이비드 브룩스처럼 명쾌하게 정의해주는 작가가 있을까? 이번 창원조각비엔날레에 참여하고 있는 브룩스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알레고리로 사용하고 있다.

“새로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찰스 다윈을 살펴봅니다. 그는 시대를 뛰어 넘어 새로움에 대한 개념을 해석하는 매우 독특한 창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윈은 새로움이란 개념을 시간에 대한 깊이 있는 시나리오와 생물학의 범주 속에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일명 진화론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끊임없는 변화의 상태로 파악하는 시점. 이는 다른 객체 다른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특정 순간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형식과 형상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이런한 변화된 결과는 다음 변화의 순간까지만 유효합니다. 이들 생명체들로 구성된 세상이란 고정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 변화하는 환경 위를 둥둥 떠다니는 네트워크와도 같습니다. 그들은 어느 한 곳에 닻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고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변화할 수 있는 능력,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은 지속가능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정체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2012년 창원조각비엔날레에 대한 글을 쓰면서 윗 글을 인용한 것은 조각이 보여줄 수 있는 역동성에 주목하기 위해서이다. 19세기 후반 이후, 역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노력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드가가 왁스와 점토 모델을 활용했던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20세기 시작과 함께 메다르도 로소는 조작작품의 표면에 미치는 주변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눈뜨게 했고, 특히 미래파의 보치오니는 조각적 형상에 동적감성을 부여하였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수많은 조각가들이 조각을 고정된 물질로 바라보는 정의방식에 대항해서 싸워왔다. 또한 그들의 작품이 상징조형물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들 모두 순간을 잡아내고, 변화하는 과정을 하나의 형상으로 압축하고, 환경과의 지속적인 관계성과 움직임을 반영하기 위한 모더니스트 조각각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현대조각의 가장 큰 도전은 어떻게 하면 리얼리티의 역동성을 하나의 형식으로 담아내는가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의 고정된 작품을 가지고 현재진행형의 과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필자는 확신한다. 현대조각을 실천함에 있어 언제든 다음 단계의 형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의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각의 진화된 정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음 단계의 움직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현대조각가들은 그들의 방법론 진화시키고 있다. 매일 같이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경험하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현대조각은 뒤에서 머뭇거려선 안된다. 하나의 작품에서 더 진화한 다음 작품으로 또 다른 진화를 실천해야 한다.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조각가의 인식의 진화. 필자는 그 속에서 현대조각의 진화를 발견한다.

그러나 명심할 점은 새로움을 찾는다고 해서 새로움 자체만을 뒤쫒아서는 안된다 사실이다. 새로움이란 예술적 실천의 연속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새로움이란 예술을 통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조각을 만든다는 것은, 데이비드 브룩스의 말처럼, “끊임없이 전진하는 현재”에 동참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비엔날레, 리차드 바인 (아트 인 어메리카)

새로운 시대를 위한 비엔날레
수십 여개의 비엔날레가 난무하는 국제미술계에서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위한 비엔날레의 다섯가지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로 40-50대의 중견작가를 선택했다. 작가의 잠재력과 역량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시스템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미술사적 진화론을 교과서 삼아 새로움의 가치에 정당성을 부여해왔다. 그래서 젊은 “이머징” 작가(미래가치를 위한 좋은 배팅)와 이미 유명한 마스터(이미 검증된 미술사적 가치와 시장의 가치) 작가를 선호해왔다. 그렇다보니 중견작가에 대한 큐레이터의 기획과 상업적인 지원은 상대적인 빈곤을 보여왔다. 이 중요한 시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전시와 관객과의 만남, 그리고 비판적인 담론까지 제공하는 창원조각비엔날레는 그런 점에서 차별적인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둘째, 눈여겨 볼 점은 이번 비엔날레가 최근 유행하고 있는 트렌디한 멀티미디어 설치작품이 아닌 관객과 환경 그리고 작품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을 유도하고 있는 독특한 조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자연환경과 소통해야 한다는 숙제와 비엔날레 기간이 끝나고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숙제는 조각가들로 하여금 더 진지하게 작품을 제작하게 만들었다. 이는 여타 다른 현대미술 프로젝트가 보여주지 못했던 진지함이다. 넷째, 작가들이 선호하는 “세계적인 문화의 중심”이 아닌 지역 시민들이 언제든 그들의 삶에서 벗어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직접 찾아 나서는 예술의 공익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로잉 전시와 작가들의 작품 과정을 볼 수 있는 도표와 영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예술이라는 것이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검은 돌기둥처럼 미스테리한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생각과 감정, 땀과 노력, 기술과 지치지 않는 변화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꿈꾸는 섬: 창원조각비엔날레, 토마스 아놀드 (디렉터, 매리분 갤러리)

꿈꾸는 섬: 창원조각비엔날레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첫 발을 내 딛었다. 매우 독특한 비엔날레 모델이다. 조각작품으로 이루어진 이 비엔날레는 작품들이 영구히 설치장소에 남아 시민들과 소통하는 구조이다. 다른 비엔날레와 비교해서,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것이 보여주는 비전은 결코 작지 않다. 예술과 자연을 결합시키려는 비전은 친환경 도시 창원시의 정체성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20명의 빼어난 다국적 조각가들이 합류해서 시민들이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설치조각작품을 돝섬이란 자연 속에 남겼다. 돝섬의 풍광에 뛰어든 작가들은 현장을 변형시키고,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시민들로 하여금 작품을 통해 환경과 도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세계적인 환경도시의 선두주자 창원시의 앞서가는 의지를 반영하듯, 창원조각비엔날레는 15명의 한국작가이외에도 5명의 해외작가들을 초청하였다. 이번 비엔날레의 타이틀 “꿈꾸는 섬”에서 엿볼 수 있듯이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창원시의 환경을 지켜온 역사와 새로움을 창조해나갈 비전과 희망을 보여준다. 창원, 마산, 진해 등 세 도시가 창원이란 이름으로 재탄생했듯이, 다양한 작가들의 아이디어가 돝섬이란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며 시민들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다. 2012년 녹색기후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창원시의 친환경 문화정책의 결과가 예술섬을 탄생시킨 것이다. 창원비엔날레는 이처럼 예술이라는 것이 어떻게 창원시의 정체성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으며, 현대적이고 이상적인 도시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